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2026-03-20 (타계 11년 뒤 출판)
2026-03-20
산업 문명이 초래한 위기의 시대, 시적 감수성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기후 위기를 포함해 산업 문명이 초래한 생태적·사회적 위기에 대한 인식이 아무리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도 그것이 내면 깊이 침투된 인식이 아닌 한 모든 것은 부질없는 잡담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가 이 책 전체를 통해 거듭 제기하는 질문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와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하는 능력, 곧 생태학적 사유의 원천인 ‘시적 감수성’이라는 것이다. 시적 감수성은 단지 문학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 느끼고, 생명 있는 것들과 원초적 조화 속에서 살았던 시절의 근본적인 감각이다. 산업 문명은 이 감각을 파괴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게 만들었다. 이 감각의 회복 없이는 어떤 기술적·정책적 해결책도 생태적 파국을 막을 수 없다. 저자는 이 물음을 문학 비평의 언어로 풀어낸다. 김용택의 시에서 달빛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원초적 교감을 읽어내고, 신동엽의 시 세계에서 인간 본연의 생명 있는 문화에 대한 동경을 발견한다. 김수영이 발전소 없는 혼란을 소망했을 때, 거기에는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허상인지를 대뜸 알아보는 ‘시적 직관의 힘’이 있었다. 저자에게 진정한 시인은 곧 가장 심오한 생태론자이며, 시는 우리가 잃어버린 생태적 감수성을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다. 1999년 초판 출간 당시 이 책은 한국 문학 비평계에서 낯설었던 생태학적 시각을 문학 읽기에 본격 도입한 작업으로 평가받으며 제7회 대산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이후 세 차례의 개정을 거쳐 4판에 이른 이 책은, ‘기후 위기’ 등이 일상의 언어가 된 지금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읽힌다. 이십여 년 전의 질문이 지금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이 책이 시대를 앞서간 것이 아니라 시대가 이 책을 따라잡은 것이다.